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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내보진 않았지만 책을 쓸 때, 머리말은 항상 책을 모두 쓰고 난 다음에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 괜찮다 생각이 드는 책은 머리말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책을 다 읽고 나서 머리말을 다시 보곤 한다.


픽사의 CEO 애드 캣멀이 20년 넘게 픽사를 경영하면서 얻은 인사이트에 대해 쓴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책은 특히나 저자의 책의 쓰게 된 이유와 동기가 명확하게 느껴져서 그의 머리말에서 발췌를 했다.


먼저 그가 픽사를 운영하게 된 목적과 성취에 관한 이야기다.

195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하길 꿈꿨지만, 어떻게 해야 그 길로 갈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새로운 영역으로 떠오르던 컴퓨터그래픽이 내 꿈을 실현할 수단이 되리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손으로 그림을 그려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대학원 시절 나는 세계 최초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을 목표로 설정했다. 나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20년간 지치지 않고 달려왔다.


1995년, 내 인생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던 목표를 결국 달성했다. 처음엔 안도와 환희를 느꼈다. ... 모든것이 순조롭게 풀렸지만 나는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꿈꿔온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삶의 길잡이었던 본질적인 의사결정의 틀을 상실한 듯한 기분이 엄습했던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토이 스토리>가 개봉한 이후 나는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 목표를 잃어버렸다. '다른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물론 픽사가 탄탄대로에 진입했다든지, 픽사에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 하지만 어릴 적 꿈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고자 여러 해 동안 고민하고, 대학원 시절 조금이라도 더 오래 메인 프레임 컴퓨터를 사용하려고 컴퓨터 연구실에서 밤낮으로 죽치고 살 정도록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목표의식은 사라졌다. 나는 20년간 기차의 선로를 만들었다. 선로를 따라 기차를 운행하는 일은 훨씬 덜 흥미로운 일처럼 보였다. '앞으로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내가 인생을 바칠 만한 일일까? 이제 어떤 원리에 따라 나를 구성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의 답을 얻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정말 이루고자했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안도감과 짧은 행복 다음에 찾아오는 허무함에 대해 공감이 되는 한편 정말 인생 일대의 목표를 이룬다 하더라도 느끼는 허무함은 같거나 오히려 더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란 고민의 시간을 거쳐 그가 얻은 답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자금을 조달받고, 영리한 직원들을 많이 채용해 많은 관심을 끌어모으는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 ...그러다 이들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것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어리석었다고 평가받는 잘못이 아니라, 당시에도 명백히 어리석어 보이는 잘못을 저지른다. 도대체 영리한 경영자들이 바보처럼 기업을 위기에 빠트리는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다른 기업 경영자들의 실수를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를 더 잘 지각할 수 있을까? ... 영리하고 창의적인 기업들이 실패하는 공통된 원인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수수께끼였다. 나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로 결심했다.... 관심의 초점이 기술적 문제 해결하는 데서 건전한 경영철학을 일구는 것으로 옮겨가면서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이 뛰었다. 내가 도전할 두 번째 과제는 첫 번째 과제만큼이나 신나는 도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의 초기 목표의식을 상실했다는 점이 그를 좌절시키거나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지 않았다. 초기 목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이런 목표의식의 변화는 그가 말하는 삶과 경영철학에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하고 해결한 경영 전략은 다음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기업 내부에는 직원들의 창의성 발휘를 저해하는 위협요소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고 해소하는 것이 중간 관리자와 경영자의 임무이다. 이와 관련, 픽사 경영진이 창의적 기업문화를 육성하고자 채택한 다양한 경영 전략들을 소개한다. 나는 이 중에서 불확실성, 불안, 소통 부족,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처하는 메커니즘이 가장 중요한 경영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의 경험이 어마어마하게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책이었다. 농도가 짙고 깊어서 몇 번이고 읽어도 우려나오는 차 같았다. 픽사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기업은 창의성이 엄청 강조되는 기업이기도 하지만 창의성이 필요없는 기업이 존재할까? 모든 기업뿐만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환경안에서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고민할 때도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많은 것 같다.


그는 이 책을 그의 투자자이자 동료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바친다고 했는데, 감히 말하자면 스티브 잡스가 정말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알게 되고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 정말 감동적이다.


참고문헌

애드 캣멀, 에이미 월러스 <창의성을 지휘하라>, 2014,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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