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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동물에 대해 보이는 잔인함은 어린 아이의 몰 이해에서 비롯된다. 그 아이는 동물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던 것이다. 결국 어떤 행위가 악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늘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그런 행위를 선택했던 지성의 정도가 너무 낮았던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 느낄 수 있는가. 당연히 우리의 신경 조직이 미치는 정도 만큼일 것이다. "만약 신경 조직이 더 멀리 까지 즉 이웃 사람에게 까지 미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고통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 우리의 기억과 상상력을 활용해 고통을 주는 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이것은 오로지 배움에 의해 가능해진다.

배움이 커지면 이득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비루한 이기적 필연성이 더 고양되는 이기적 필연성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 우리는 "도덕적 인류"에서 "현명한 인류"로 진화해간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여기서 배움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식이라기 보단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에게 동물을 괴롭히면 안된다는 사실을 눈높이에 맞추어서 알려주듯이 살면서 체득으로 얻는 배움 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나이와 역량에 맞춤화된 배움이 여전히 필요하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해도 우리는 언제나 낯선 환경과 새로운 상황에 마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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