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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다. 설마 설마 이것보다 더 심하겠어? 싶을 때 그 설마는 이미 내 눈앞에 펼쳐진 '실제'이다. 



영화의 맨 처음 철책을 지키는 군인이


"이건 농담인데 만약 혹시나 배가 고장이 나서 선을 넘어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남철우는

"아니 이 배는 제 전재산인데..." 하며 말 끝을 흐린다. 


전 재산인데 어떻게 배를 버리느냐 그럴 수 없다 또는 전 재산인데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배를 버려야지 하지 않는다. 내가 본 그 여지는 당에 대한 암묵적인 믿음이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믿음. '이건 내 전 재산인데' 라는 말은 말 그대로 그게 아니면 당장 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일어나서는 안 되는 가장 최악의 상황인 거다.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거지. 아니 사람의 생사가 걸려있는데 이런 질문 자체만으로도 가혹하다. 그렇기에 애써 그 불편한 질문을 불편한 의심을 없는 듯 스스로를 속인다.


그런데 숨겨둔 그 의심이 현실이 된다. 현실이 비현실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벗어나려 노력해보아도, 참고 견뎌보아도 애초에 소통의 창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어떤 다른 목적을 가진 채 바라보는 사람에게 호소하는 것만큼 소모적인 일은 없다. 마치 그물같이 발버둥치면 옥죄어 오고 가만히 있으면 잡히는 상황이다. 이 상황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인데 이게 말이 되나 싶은데 이 모습자체가 비현실적이라 인식하는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마저 비현실적이다. 오직 덫에 걸린 나 자신과 젊은 경호원만이 그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들은 힘이 없다. 다수 대 소수로도 힘이 없고, 권력에 있어서도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럼에도 남철우는 계속해서 여지를 남긴다. 그 와중에 여자를 도와주고,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돌아갈 때 입은 옷도 벗어던지면서 경호원이 주는 곰인형과 달러 지폐는 받아들고 간다. 그건 그물에 익숙하지 않음과 이런 여지들이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가 얼마나 순수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상적인 이야기 속에서가 아닌 현실에서는 아무도 그걸 이해해주지 않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는 영화를 모두 다 보고 나서 느낀 내용이었다.


나로서 조금 충격적이었던 건 영화를 다 보기 전까지 난 여전히 남철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반전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사실은 이것마저도 거짓말 아닐까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 조차 그런데 이미 반 정도 확신을 갖고 심문하는 대상을 설득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철우에게 이 상황이 '그물' 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적절해서 어떻게 사람을 그물에 가둘 수 있지 혼란스러우면서도 그 그물을 걷어낼 방법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그물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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