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말 오랜만에 본 소설책이었다. 나는 바빠지면 소설책부터 손에서 놓는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 (누구나 그런걸까? 알 수 없다) 에세이보다도 더 빠르게 손을 떼어서 가장 최근에 읽었던 소설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이다. 이 책은 서점을 들렸다가 우연히 손에 집어낸 책 중 하나였다. 전자책을 구독해 보게 되면서 어쩐지 오프라인 서점을 더 자주 찾게 되었다. 물론 전자책으로 읽을 책들도 많이 쌓여 있고 읽고 싶은 것도 많은데 왠지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볼 책을 고르는 느낌이라 (말 그대로 그렇긴 하지만) 신간이나 요즘 핫한 책은 어떤게 있는지 더 궁금해지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결국 주말에 서점을 가 전자책으로 보지 못한 표지를 쭉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몇 권 골라 읽어보다 오는데 <쇼코의 미소>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최은영 작가를 알았던 건 아닌데 알고보니 <쇼코의 미소> 안의 단편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를 예전에 김영하씨 팟캐스트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그 내용이 꽤나 감명적이어서 짧게 코멘트를 적어두었던게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것때문에 책을 보게 된건 아니고 책장을 넘기면 작가 소개와 함께 작가의 말의 한 글귀가 쓰여져 있었는데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귀를 읽는 순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은 없는 상태에서 책을 가져왔는데 읽다보니 안 살수가 없어서 바로 책을 구매했고, 일주일동안 출퇴근시간에 읽으며 푹 빠져서 살았던것 같다. 단편을 엮어 만든 책이라 보통 하루에 하나에서 두 편정도를 볼 수 있어서 매일 한 스토리에 대해 쭉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여운이 많이 남는 건 <쇼코의 미소>와 <한지와 영주> 두 작품이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팟캐스트때 읽어주셨던 내용이 너무 뇌리에 박혀 있어서 처음보는 것 같지 않아 조금 아쉬웠고, 나머지도 대부분 재미있었다.

 

책 제목인만큼 <쇼코의 미소>는 내용도 길었고 (지금 보니 내가 꼽은 두 작품이 내용이 가장 길었다) 생소한 이야기인데도 너무나 현실감있게 마치 영화보듯 장면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주인공의 감정까지도 눈에 보이듯이 전달되는 느낌이어서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한지와 영주>도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건 비슷했던 것 같다. 소설이란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현실감 있었다. 어떻게 실제로 겪지도 않은 상황과 관계를 실제로 경험했다해도 이렇게까지 표현하진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소설로 쓸 수 있을 까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소설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들을 마치 내 이야기처럼 경험하고 공감하게 만들어주는 것. 세상 사람들에게 각자 나름의 삶이 있다고 하면 쓰여져 있다고 해도 모두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자신의 존재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아주 적절한 책이라고 느껴졌다. 사실은 적절하다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너무나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상황들이지만 개개인에게는 절대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와 감정을, 이런 이야기를 주제로 잡았다는 부분부터 소름돋도록 대단했다. 사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표현할 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내 삶을 이런 식으로 표현해라고 해도 섬세한 감정선을 글로 잘 풀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뛰어난 소설가의 책을 읽으면 목숨이 몇 개가 있어 여러 번 삶을 살아본 사람처럼 어떻게 여러 사람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댓글